글로벌 금융 시장과 실리콘밸리가 거대 자산가들의 거취 문제로 크게 술렁이고 있습니다. 테크 업계의 전설적인 투자자이자 페이팔(PayPal) 및 팔란티어(Palantir)의 공동창업자인 피터 틸(Peter Thiel)이 최근 미국을 떠나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가족과 함께 거처를 옮겼다는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약 280억 달러, 우리 돈으로 무려 42조 원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자산을 보유한 그가 왜 갑자기 남미행을 택했을까요? 이는 단순히 개인의 주거지 이전을 넘어, 전 세계 초고액 자산가들(VVIP) 사이에서 급격히 확산하고 있는 ‘플랜 B(Plan B) 전략’과 ‘주권 분산’이라는 거대한 시대적 흐름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피터 틸이 새롭게 둥지를 튼 곳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위치한 약 1,200만 달러(한화 약 180억 원) 규모의 초호화 저택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는 이미 자녀들을 현지의 명문 학교에 등록 시켰으며, 단순한 휴양 목적이 아닌 장기 거주를 염두에 둔 본격적인 이주 절차를 마쳤습니다. 외신에 따르면 틸의 이러한 행보는 미국의 숨 막히는 세금 압박과 갈수록 고조되는 정치·사회적 불안정성으로부터 자신과 가족, 그리고 자산을 보호하기 위한 치밀한 계산 끝에 나온 결과물입니다.
가장 결정적인 도화선이 된 것은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추진 중인 이른바 ‘초부유층 과세 법안’입니다. 현재 캘리포니아주는 순자산 10억 달러(약 1조 5,000억 원) 이상을 보유한 자산가들을 대상으로 일회성 5% 부유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강력하게 검토하고 있습니다. 이 법안이 최종 통과되어 현실화될 경우, 피터 틸 개인이 부담해야 할 세금만 자그마치 14억 달러, 우리 돈으로 2조 1,000억 원이 넘는 천문학적인 액수에 달하게 됩니다. 아무리 수십조 원의 자산가라 할지라도 단 한 번에 조 단위의 세금을 현금으로 납부해야 한다는 사실은 엄청난 재정적 타격이자 리스크로 작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에 더해 미국의 극단적인 정치적 양극화와 사회적 갈등, 그리고 치안 불안 등도 실리콘밸리 엘리트들의 마음을 돌아서게 만든 주요 원인으로 꼽힙니다. 자산가들은 더 이상 미국이라는 단일 국가가 자신들의 생명과 재산을 온전하게 영구히 지켜줄 수 없다고 판단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수많은 국가 중 왜 하필 아르헨티나였을까요? 여기에는 정치적 역학 관계와 경제적 자유주의라는 두 가지 핵심 키워드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피터 틸은 최근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 하비에르 밀레이(Javier Milei) 아르헨티나 대통령과 매우 긴밀하고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 온 것으로 유명합니다. 극단적인 규제 완화와 시장 중심주의, 그리고 세금 감면을 외치는 밀레이 대통령의 강렬한 리버테리언(자유의지주의) 성향은 평소 보수주의적이고 자유주의적인 철학을 피력해 온 피터 틸의 가치관과 완벽하게 부합했습니다.
아르헨티나 정부 역시 피터 틸의 상징성을 높이 평가하여 그에게 파격적인 ‘시민권 수여’ 제안까지 건넨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규제와 과세 압박이 심해지는 미국과 달리, 기업가 정신을 전폭적으로 우대하고 자산가들을 환영하는 아르헨티나의 친기업적 변화가 틸에게 매력적인 대피처이자 기회의 땅으로 다가온 셈입니다.
사실 피터 틸의 ‘국적 쇼핑’과 리스크 분산 투자는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그는 이미 미국뿐만 아니라 고향인 독일, 그리고 과거에 시민권을 취득해 논란이 되었던 뉴질랜드 여권까지 보유한 다중 국적자입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최근에는 유럽의 금융 요충지인 몰타 시민권 취득까지 추가로 추진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번 아르헨티나 거점 마련까지 더해지면 그는 북미, 유럽, 오세아니아, 남미 등 전 세계 주요 거점에 모두 합법적인 신분과 거주지를 확보하게 됩니다.
다만, 팩트체크 측면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그가 거처를 옮겼다고 해서 미국과의 연결고리를 완전히 끊은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전문가들의 분석에 따르면 피터 틸의 전체 자산 중 99% 이상은 여전히 미국의 주식, 펀드, 기술 기업 지분 형태로 안전하게 묶여 있습니다. 현재까지 확인된 아르헨티나 내 직접 투자 자산은 그가 매입한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저택 정도입니다. 즉, 경제적 활동과 자산의 본진은 미국에 두되, 신변의 안전과 세금 리스크를 피하기 위한 ‘ 물리적·제도적 대피소’를 지구 반대편에 영리하게 구축한 전략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자산관리 전문가들은 피터 틸의 이번 행보가 글로벌 초고액 자산가들 사이에서 대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주권 분산(Flag Sovereign Option)’ 전략의 교과서적인 사례라고 입을 모읍니다. 자산이 수천억 원에서 수조 원에 이르는 이른바 초부유층 네트워크(R360 등)에서는 단 하나의 국가에 거주지와 시민권, 세금 체계를 종속시키는 것을 극도로 위험한 리스크로 간주합니다.
지정학적 위기, 갑작스러운 제도 변화, 징벌적 과세가 언제든 개인의 부를 위협할 수 있는 변동성의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들은 복수의 국적을 취득하고, 자산을 여러 국가의 금융 시스템에 쪼개어 배치하며, 기후 변화나 정치적 격변으로부터 비교적 안전한 남반구 등에 제2, 제3의 거점을 확보하는 ‘플랜 B’를 필수로 가동하고 있습니다. 피터 틸이라는 거물의 과감한 남미 이주는 이러한 흐름을 더욱 가속화 시키는 기폭제가 될 전망입니다.
자본은 규제가 없고 자신을 가장 환영해 주는 곳으로 물 흐르듯 이동하기 마련입니다. 미국의 강력한 과세 드라이브와 사회적 혼란이 지속되는 한, 제2의 피터 틸, 제3의 피터 틸은 계속해서 등장할 것입니다. 국가라는 울타리를 넘어 스스로 주권을 분산하고 자산을 지켜내는 억만장자들의 고도화된 생존 방정식이 과연 글로벌 경제와 각국 정부의 조세 정책에 어떤 나비효과를 불러올지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