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 배너의 경고를 무시한 개발자, 기밀 시스템을 안방처럼 드나들다

레드 배너의 경고를 무시한 개발자, 기밀 시스템을 안방처럼 드나들다

이번 사건의 피의자인 미켈레 스파뉴올로는 구글에서 무려 12년 이상 근무한 베테랑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입니다. 이탈리아 국적을 가졌으나 스위스에 거주해 온 그는 구글 내에서도 고도화된 데이터 시스템에 접근할 수 있는 특별한 권한을 부여받은 인물이었습니다.

그가 매일같이 업무를 위해 로그인했던 내부 소프트웨어 툴 화면 상단에는 붉은색 글씨로 ‘Google Confidential(구글 기밀)’이라는 선명한 경고 배너가 상시 띄워져 있었습니다. 구글의 모든 임직원이 주기적으로 서명하고 교육받는 사내 윤리 규정과 비밀유지 서약(NDA)에 따르면, 이 시스템을 통해 얻은 모든 데이터는 오직 회사의 마케팅 및 비즈니스 목적을 위해서만 사용되어야 하며 외부 유출이나 개인적 이익 취득은 엄격히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스파뉴올로에게 이 붉은 경고문은 한낱 문구에 불과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가진 강력한 데이터 접근 권한을 회사 발전이 아닌, 일확천금의 기회로 이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눈독을 들인 것은 매년 연말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구글의 대표적인 콘텐츠, 바로 ‘올해의 검색어(Year in Search)’ 트렌드 통계 데이터였습니다.

‘AlphaRaccoon’의 탄생과 예측 마켓의 허점을 파고든 대담한 베팅

스파뉴올로는 2024년 5월경, 탈중앙화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작동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예측 마켓 플랫폼인 폴리마켓에 ‘AlphaRaccoon(알파라쿤)’이라는 사용자 이름으로 은밀하게 계정을 생성했습니다. 폴리마켓은 정치, 스포츠, 팝 컬처, 과학 기술 등 미래에 일어날 특정 사건의 결과에 사용자들이 암호화폐를 걸고 베팅하는 일종의 합법적 예측 시장입니다. 결과가 확정되면 정답을 맞힌 사람들에게 베팅 비율에 따라 보상금이 지급되는 구조입니다.

그가 노린 베팅 판은 ‘2025년 구글 연말 검색 트렌드(Google’s 2025 Year-End Search Trends)’와 관련된 예측 시장이었습니다. 전 세계 수십억 명의 사용자가 무엇을 가장 많이 검색했는가는 구글이 공식 발표하기 전까지는 철저히 베일공개에 부쳐지는 기업 기밀입니다. 시장 참여자들은 저마다의 추측과 불완전한 인터넷 데이터를 바탕으로 확률을 계산하며 돈을 걸고 있었습니다. 정보의 비대칭성이 극에 달하는 이곳이야말로, 정답을 미리 알고 있는 스파뉴올로에게는 거대한 황금어장이었던 셈입니다.

연방 검찰의 공소장에 따르면, 그는 2025년 10월부터 12월 사이에 구글 기밀 시스템에 수시로 접속해 실시간으로 집계되고 있던 검색어 순위와 내부 마케팅 자료를 빼돌렸습니다.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폴리마켓에서 총 270만 달러(한화 약 37억 원)가 넘는 대규모 자금을 동원해 거침없이 베팅을 이어갔습니다.

확률 ‘0%’에 가까웠던 인디 가수의 대역전극, 알고 보니 조작된 판이었다

스파뉴올로의 범행이 가장 극적으로 드러난 대목은 인디 팝 뮤지션인 ‘D4vd(데이비드)’와 관련된 베팅이었습니다. 당시 D4vd는 한 10대 소녀를 살해한 혐의로 체포 및 기소되면서 미국 전역에서 엄청난 충격을 안겼던 인물입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그의 이름은 단기간에 구글 검색창을 도배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폴리마켓의 일반 참여자들은 이 인디 가수가 전 세계 연간 통산 검색량에서 기라성 같은 글로벌 팝스타나 정치인들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폴리마켓 시스템이 계산한 D4vd의 1위 등극 확률은 0%에 가까운 극도의 ‘롱숏(Long-shot, 실현 가능성이 매우 낮은 희박한 확률)’ 상태였습니다. 즉, 배당률이 어마어마하게 높은 판이었습니다.

하지만 구글 내부 시스템을 통해 이미 D4vd가 압도적인 수치로 연간 검색어 1위 가도에 올라섰다는 확정적 지표를 확인한 스파뉴올로는 구글의 공식 발표 일주일 전인 2025년 11월 27일, D4vd가 가장 많이 검색된 인물이 될 것이라는 항목에 확신에 찬 거액을 베팅했습니다. 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10월에도 힙합 스타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가 검색어 상위권에 오를 것이라는 점에 사전에 돈을 걸었습니다. 당시 구글 내부 데이터는 일반 대중의 예측과 달리 켄드릭 라마가 최고 검색어 자리를 굳히고 있음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2025년 12월 4일, 구글이 ‘2025년 올해의 검색어’ 통계를 세상에 공식 발표하자 예측 마켓은 요동쳤습니다. 스파뉴올로의 베팅은 100% 완벽하게 적중했고, 그는 단숨에 120만 달러(약 16억 원)에 달하는 순이익을 거두었습니다. 일반 참여자들에게는 기적 같은 역전극으로 보였겠지만, 사실은 패를 모두 보고 참여한 철저히 불공정한 게임이었습니다.

꼬리가 길면 잡힌다: 블록체인의 투명성이 부메랑이 되다

스파뉴올로는 자신이 거둔 막대한 불법 수익을 은닉하기 위해 치밀한 사후 작업을 벌였습니다. 그는 수사기관의 추적을 피하고자 획득한 암호화폐를 여러 개의 지갑으로 분산 전송하고, 거래 내역을 섞어 출처를 알 수 없게 만드는 다양한 프라이버시 금융 도구(믹싱 서비스 등)를 동원해 돈세탁을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간과한 치명적인 사실이 있었습니다. 그가 범행 무대로 삼은 폴리마켓과 이더리움 기반의 웹3 생태계는 모든 거래 내역이 블록체인 원장(Ledger)에 영구적으로 기록되며, 누구나 이를 열람할 수 있는 극도의 투명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입니다.

폴리마켓 측은 플랫폼 내에서 특정 계정(‘AlphaRaccoon’)이 구글 관련 예측 판이 열릴 때마다 상식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완벽한 타이밍에 거액을 베팅하고 비정상적인 수익을 올리는 패턴을 포착했습니다. 폴리마켓은 온체인(On-chain) 데이터 분석을 통해 이 의심스러운 거래 흐름을 즉각 추적했고, 미 연방 검찰 및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와 긴밀하게 협조하여 해당 계정의 소유주가 구글 내부 직원임을 밝혀내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습니다. 사법당국의 눈을 피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던 블록체인의 익명성이, 오히려 그의 발목을 잡는 가장 강력한 증거가 된 것입니다.

사법당국의 강력한 경고 “예측 마켓도 내부자 거래 규제 예외 없다”

이번 사건은 뉴욕 검찰의 수장인 제이 클레이튼(Jay Clayton) 연방검사가 맨해튼 지검장으로 부임한 이후 강력하게 추진해 온 ‘예측 마켓 내 부정거래 근절’ 기조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1기 시절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을 지내며 금융 시장 규제의 베테랑으로 꼽히는 클레이튼 검사는 이번 기소를 발표하며 시장에 매우 단호한 메시지를 던졌습니다.

“이번 기소는 수십 년간 이어져 온 엄중한 원칙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다. 기업의 내부자는 시장에서 부당한 이익을 취하기 위해 회사의 기밀 정보를 악용할 수 없다. 내부자 거래는 우리 시장의 무결성과 신뢰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범죄다. 기술의 형태나 플랫폼이 아무리 새롭고 참신할지라도, 탐욕에 눈먼 범죄 행위는 철저히 조사되어 법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실제로 클레이튼 검사가 이끄는 뉴욕남부지검은 최근 예측 마켓 플랫폼을 대상으로 한 대대적인 사법 칼날을 휘두르고 있습니다. 불과 얼마 전에는 베네수엘라의 독재자 니콜라스 마두로 체포 작전 기획에 참여했던 미 육군 특수부대(그린베레) 하사 개넌 켄 반 다이크(Gannon Ken Van Dyke)가 작전 성공 여부에 미리 베팅해 40만 달러를 챙긴 혐의로 기소된 바 있습니다. 이번 구글 엔지니어 사건은 예측 마켓을 무대로 한 두 번째 메이저급 연방 범죄 기소 사례로 기록되었습니다.

거센 후폭풍: 구글의 즉각적 징계와 폴리마켓의 입장

사건의 파장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구글 측도 즉각 공식 입장을 내놓았습니다. 구글 대변인은 “해당 직원이 모든 임직원에게 열려 있는 내부 마케팅 툴에 접근한 것은 사실이나, 이를 통해 얻은 기밀 정보를 사적 베팅에 활용한 것은 회사의 핵심 정책과 윤리 규정을 심각하게 위반한 행위”라며 강하게 규탄했습니다. 구글은 즉시 스파뉴올로를 정직(Leave) 처분했으며, 현재 연방 사법당국의 수사에 전폭적으로 협조하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수사 및 재판 결과에 따라 그의 해고는 물론 민형사상 추가 소송이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한편, 폴리마켓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플랫폼의 신뢰성을 방어하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폴리마켓 대변인은 테크크런치(TechCrunch) 등 주요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뉴욕남부지검 및 CFTC와 매우 긴밀하게 협력해 왔다”라며, “폴리마켓은 현재 미국 내에서 사법당국의 수사에 전면 협조하여 내부자 거래 기소를 이끌어낸 유일무이한 예측 마켓 플랫폼”임을 강조했습니다. 블록체인 기술이 가진 투명한 추적 기능을 활용해 오히려 시장의 정화 작용을 돕고 있다는 점을 피력한 것입니다.

현재 미켈레 스파뉴올로는 체포된 이후 뉴욕 연방법원에 출두했으며, 225만 달러(한화 약 31억 원, 현금 100만 달러 예치 조건)라는 막대한 보석금을 조건으로 우선 석방된 상태입니다. 그에게 적용된 상품 사기 및 전송 사기, 돈세탁 혐의는 미국 연방법상 각각 최대 수십 년의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는 중범죄입니다.

테크 및 웹3 업계에 남긴 과제: 신종 금융 플랫폼의 규제 사각지대

이번 사건은 단순한 한 직원의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를 넘어, 급성장하는 웹3 및 예측 마켓 플랫폼이 직면한 제도적 과제를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과거 주식이나 선물 시장에만 적용되던 전통적인 ‘내부자 거래’의 개념이 이제는 기업의 내부 검색 데이터, 심지어 정부의 비밀 군사 작전 계획에 이르기까지 비전통적인 영역으로 무한히 확장되고 있음을 증명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최근 폴리마켓은 오픈AI(OpenAI), 앤트로픽(Anthropic), 스페이스X(SpaceX)와 같은 비상장 거대 테크 기업들의 미래 기업 가치나 자금 조달 여부를 두고 베팅하는 판까지 새롭게 개설하며 덩치를 키우고 있습니다. 내부 사정을 가장 잘 아는 실리콘밸리의 테크 임직원들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사내 정보를 이용해 예측 마켓을 교란할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로 다가온 것입니다.

전통 금융권 수준의 강력한 감시 체계가 도입되지 않는다면, 예측 마켓은 ‘대중의 지혜를 모으는 혁신 플랫폼’이 아닌 ‘내부자들의 손쉬운 사설 도박장’으로 전락할 위험이 있습니다. 한 천재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의 대담한 범행은 결국 블록체인의 투명한 장부 위에 박제된 채 끝을 맺었습니다. 사법당국이 칼을 빼든 만큼, 앞으로 웹3 업계와 빅테크 기업들이 임직원들의 정보 접근권과 도덕적 해이를 막기 위해 어떤 고강도 보완책을 내놓을지 귀추가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