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90억 원짜리 제안, 그리고 단호한 거절
미국 켄터키주 북부, 메이스빌(Maysville) 외곽에는 수 세대에 걸쳐 한 가족이 일궈온 1,200에이커(약 4.86km²)의 농지가 있습니다. 이 땅의 주인은 82세의 아이다 허들스턴입니다.
지난해, 신원을 밝히지 않은 ‘주요 인공지능 기업’의 대리인이 그녀를 찾아왔습니다. 제안은 단순했습니다. 농지의 일부를 팔아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대가로 2,600만 달러, 한화로 약 290억 원을 제시했습니다. 시가를 크게 웃도는 파격적인 금액이었습니다.
허들스턴의 답도 단순했습니다. 거절이었습니다.
📌 거절 이유: 데이터센터 건설로 인한 수질 오염 우려, 농지 영구 소실, 지역 경제에 대한 실질적 기여 부재
켄터키 지역 방송사 WKRC(Local 12)가 보도한 이 소식은 미국 전역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AI 인프라 확장을 위한 빅테크 기업들의 공격적인 토지 매입이 이어지는 가운데, 수백억 원의 제안을 거절한 농부의 이야기는 단순한 개인의 결정을 넘어 더 큰 사회적 질문을 던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2. “우린 멍청한 농부가 아니에요” — 허들스턴의 목소리
허들스턴은 WKRC 인터뷰에서 거침없이 말했습니다.
“그쪽 사람들은 우리를 멍청한 농부라고 부르죠. 하지만 우리는 멍청하지 않아요. 우리 식량이 사라지고, 농지가 사라지고, 물도 없어지고, 독성 물질이 퍼지는 걸 우리는 알고 있어요. 그렇게 되면 우리는 끝이에요.”
— 아이다 허들스턴, 켄터키 농부 (82세)
그녀가 언급한 수질 오염과 독성 물질 문제는 단순한 우려가 아닙니다. 미국 전역의 데이터센터 인근 지역에서 지하수 오염, 수자원 고갈, 토양 오염 문제가 실제로 보고되어 왔으며, BBC와 롤링스톤 등 주요 언론을 통해 광범위하게 다뤄진 사실입니다.
그녀는 데이터센터가 메이슨 카운티(Mason County)에 일자리나 경제 성장을 가져올 것이라는 기업 측 주장에 대해서도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It’s a scam.” (이건 사기예요.)
— 아이다 허들스턴이 AI 기업의 지역 경제 기여 주장에 대해 내린 평가입니다.
3. AI 기업의 다음 수: 용도 변경 신청으로 우회
허들스턴 가족이 거절하자 해당 AI 기업은 전략을 바꿨습니다. WKRC 보도에 따르면, 이 기업은 켄터키 북부 일대 2,000에이커(약 8.1km²)가 넘는 부지에 대한 용도 변경(조닝 재지정) 신청을 제출했습니다.
📌 핵심 사실: AI 기업은 허들스턴 토지 매입 실패 후 인근 2,000에이커 이상 부지의 용도 변경을 신청했습니다. 허들스턴의 농지 바로 옆에 데이터센터가 들어설 가능성이 여전히 존재합니다.
결국 그녀는 땅은 지켰지만, 인접 부지에 데이터센터가 건설될 경우 그 영향권을 완전히 피하기는 어려운 상황에 놓였습니다.
WKRC 보도에서 해당 AI 기업의 명칭은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이번 제안의 당사자가 누구인지는 현재까지 확인되지 않은 사실입니다.
4. 왜 데이터센터는 농촌을 향하는가
AI 붐이 가속화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데이터센터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대형 언어 모델 학습과 추론에 필요한 컴퓨팅 자원은 막대한 전력과 냉각수를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빅테크 기업들이 도시 외곽 농촌 지역을 선호하는 이유는 복합적입니다.
- 토지 가격이 도심 대비 현저히 낮고 충분한 면적을 확보하기 용이합니다
- 지방 정부의 세금 감면 인센티브를 받기 유리한 환경입니다
- 고압 송전선로 인근 접근성이 좋은 경우가 많습니다
- 용도 변경 규제가 대도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완화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켄터키, 오하이오, 버지니아, 조지아 등 미국 동남부 및 중부 농촌 지역이 최근 수년간 데이터센터 유치의 주요 대상지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5. 미국 전역으로 번지는 갈등
허들스턴의 사례는 고립된 사건이 아닙니다. 미국 전역의 농촌 지역에서 AI 및 빅테크 기업의 토지 매입과 데이터센터 건설에 반대하는 주민들의 목소리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오리건주에서는 아마존 데이터센터 인근 지역 주민들이 수질 오염 문제를 공개적으로 제기한 바 있습니다. 메타의 데이터센터 인근에서도 지하수 오염 관련 민원이 접수되었습니다. 뉴욕타임스와 BBC 등 주요 언론들이 이 문제를 심층 보도하면서 사회적 인식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빅테크 기업들은 데이터센터 건설이 지역 세수 증대, 인프라 개선, 일자리 창출로 이어진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직접 고용 인원이 수십 명에 불과한 경우가 많고, 세금 감면 혜택으로 인해 지방 정부의 실질적 세수 기여도 역시 낮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6. 식량 안보와 농지 보존, 더 큰 문제
허들스턴의 거절이 특별한 이유는 단순히 돈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290억 원은 개인의 삶을 바꾸기에 충분한 금액이지만, 그녀는 더 큰 그림을 바라봤습니다.
농지는 한번 다른 용도로 전환되면 농업 생산지로 회복되기 매우 어렵습니다. AI 인프라 확장 수요가 맞물리면서 농지 소실 속도는 더욱 빨라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 식량 안보(Food Security)는 국가 안보와 직결된 문제입니다. 농지가 줄어들면 식량 생산 기반이 약해지고, 이는 장기적으로 식품 가격 상승과 공급 불안정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허들스턴이 “우리 식량이 사라진다”고 말한 것은 단순한 감정적 호소가 아닙니다. 현실적인 경고입니다.
7. 데이터센터와 지역 사회의 공존, 가능한가
이 문제는 AI 산업의 성장이 필연적으로 가져오는 사회적 비용을 누가 부담할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담고 있습니다.
AI 기업들의 입장에서 데이터센터 건설은 기술 발전과 경제 성장을 위한 필수 인프라입니다. 반면 지역 주민들은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적·사회적 비용을 감내해야 하는 위치에 놓입니다.
- 투명한 환경 영향 평가 의무화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 지역 주민과의 실질적인 협의 과정이 보장되어야 합니다
- 고용과 세수 측면에서 법적 구속력 있는 구체적 약속이 필요합니다
- 수자원 보호를 위한 독립적인 모니터링 체계가 마련되어야 합니다
허들스턴의 사례는 단순히 한 농부의 거절이 아닙니다. 급속도로 팽창하는 AI 인프라와 이를 위협으로 느끼는 지역 사회 사이의 갈등이 공개적으로 가시화된 사건입니다.
마치며: 땅을 지킨 농부의 질문
82세의 아이다 허들스턴은 290억 원을 거절했습니다. 그 돈은 그녀의 노후와 가족의 미래를 바꿀 수 있는 금액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녀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선택이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은 이 글의 목적이 아닙니다. 다만 그녀의 질문은 우리 모두에게 남겨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