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친구와 함께 여행 계획을 짜다가 이런 경험 해보신 적 있나요?
같은 날짜, 같은 비행기, 심지어 옆 좌석인데 친구 화면에는 30만 원으로 뜨는 항공권이, 내 화면에는 35만 원으로 뜨는 황당한 상황 말입니다. 단순히 “타이밍이 안 좋았나?” 하고 넘기셨다면, 당신은 지금까지 쇼핑몰의 AI에게 ‘호구’ 취급을 당했을지도 모릅니다.
오늘은 당신의 데이터를 훔쳐 가격을 몰래 올리는 ‘맞춤형 가격(Personalized Pricing)’의 실체와, 이를 막기 위해 칼을 빼 든 뉴욕주의 새로운 법안에 대해 아주 자세히 파헤쳐 보겠습니다.

1. 당신이 보는 가격은 ‘진짜 가격’이 아닙니다
과거에는 마트에 가면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가격표가 붙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온라인 세상은 다릅니다. 기업들은 이제 **’모두를 위한 가격’**이 아니라 **’당신만을 위한 가격’**을 제시합니다. 문제는 그게 ‘할인’이 아니라 ‘바가지’일 수도 있다는 점이죠.
여기에는 두 가지 교묘한 전략이 숨어 있습니다.
- 동적 가격 (Dynamic Pricing): 수요와 공급에 따라 가격이 변합니다. 우버가 비 오는 날 비싸지거나, 성수기에 호텔비가 오르는 것입니다. 이건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되니 억울하진 않습니다.
- 맞춤형 가격 (Personalized Pricing): 이게 문제입니다. 기업이 당신의 개인 정보를 분석해 **”이 사람은 돈을 더 낼 능력이 있다”**고 판단하면, 남들보다 비싼 가격을 보여줍니다. 일명 **’감시 가격(Surveillance Pricing)’**이라고도 불립니다.
2. AI는 당신의 무엇을 보고 가격을 올릴까?
쇼핑몰의 알고리즘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당신을 훨씬 잘 알고 있습니다.
- 사용하는 기기: “아이폰이나 맥북 사용자가 윈도우 사용자보다 소득 수준이 높다”는 데이터를 바탕으로, 더 비싼 호텔을 먼저 추천하거나 가격을 슬쩍 올립니다.
- 거주 지역 (우편번호): 부유층이 사는 지역에서 접속했나요? 그렇다면 생수 한 병을 사더라도 가격이 미세하게 높게 책정될 수 있습니다.
- 검색 기록: 특정 운동화를 3일 연속 검색하셨나요? 알고리즘은 당신의 ‘구매 의사(간절함)’를 간파했습니다. 이제 그 운동화 가격은 내일 더 오를 것입니다.
3. 뉴욕주의 선전포고: “알고리즘 가격 공시법”
이러한 기업들의 ‘깜깜이 가격 책정’에 제동을 걸기 위해, 미국 뉴욕주가 칼을 빼 들었습니다. 최근 발효된 ‘알고리즘 가격 공시법(Algorithmic Pricing Disclosure Act)’이 그 주인공입니다.
이 법의 핵심은 아주 심플하고 강력합니다. “솔직해지라”는 것입니다.
- 핵심 의무: 기업이 소비자의 개인 데이터(검색 기록, 위치 등)를 이용해 가격을 책정했다면, 반드시 가격표 옆에 **”이 가격은 당신의 개인 데이터를 쓴 알고리즘이 정한 것입니다”**라고 써 붙여야 합니다.
- 의의: 이제 뉴욕의 소비자는 내가 보는 이 가격이 ‘정가’인지, 아니면 ‘나라서 비싸게 부른 가격’인지 알 수 있게 됩니다. 이는 소비자의 ‘알 권리’를 되찾아주는 역사적인 첫걸음으로 평가받습니다.
4.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호구 탈출 꿀팁)
아직 우리나라는 이러한 법적 보호 장치가 미비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당하고만 있어야 할까요? 아닙니다. 스마트한 소비자가 되어 AI를 역이용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 시크릿 모드(Incognito Mode) 생활화: 쇼핑할 때는 브라우저의 ‘시크릿 모드’를 켜세요. 쿠키와 검색 기록이 차단되어 알고리즘이 당신을 ‘처음 온 손님’으로 인식하게 만듭니다.
- 기기 환승 이별: PC로 가격을 보고, 모바일로도 보세요. 가능하다면 가족의 다른 기기(갤럭시 vs 아이폰)로도 크로스 체크를 하세요. 가격이 다를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 로그인은 결제 직전에: 로그인 상태로 검색하면 당신의 충성도와 구매 패턴이 다 읽힙니다. 비회원 상태로 최저가를 확인한 뒤, 결제 직전에 로그인하세요.
- 장바구니 밀당 작전: 물건을 장바구니에 담아두고 며칠간 결제하지 않아 보세요. 조바심이 난 알고리즘이 “돌아오세요!”라며 할인 쿠폰을 보내줄 수도 있습니다.
5. 마치며: 데이터가 곧 돈인 시대
“데이터는 21세기의 원유”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지만 기업들이 그 원유를 이용해 우리에게 바가지를 씌우는 연료로 쓴다면 이야기가 다릅니다.
뉴욕주의 법안은 시작일 뿐입니다. 앞으로 전 세계적으로 투명한 가격 정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질 것입니다. 그전까지는, 우리의 지갑을 지키기 위해 조금 더 의심하고, 조금 더 부지런하게 비교하는 ‘스마트 컨슈머’가 되어야겠습니다.
지금 당장, 장바구니에 담아둔 그 물건, 시크릿 모드로 다시 검색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가격이 내려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