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석이 비었다? 도리토스 싣고 달리는 26,000파운드 무인 트럭, 미국 도로를 점령하다

운전석이 비었다? 도리토스 싣고 달리는 26,000파운드 무인 트럭, 미국 도로를 점령하다

SF 영화 속에서나 보던 일이 현실이 되었습니다. 운전석에 아무도 앉지 않은 26,000파운드(약 11.8톤) 무게의 대형 탑차가 도리토스와 치토스, 가토레이를 가득 싣고 미국 공공 도로를 질주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식음료 및 유통 거인인 펩시코가 미국 물류 네트워크에 무인 자율주행 트럭을 대규모로 투입하며 업계에 거대한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단순한 기술 실증이나 시범 운행이 아닙니다. 실제 소비자들이 이용하는 월마트(Walmart)와 달러 제너럴(Dollar General) 매장으로 과자와 음료를 실어 나르는 정식 상업 물류 시스템입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펩시코는 자율주행 스타트업 ‘가틱(Gatik AI)’과 손잡고 미국 아리조나주에 35대, 텍사스주에 5대, 아칸소주에 1대 등 총 41대의 무인 트럭을 현업에 배치했습니다. 이는 미국 대형 소비재 기업(CPG) 중 공공 도로에서 이처럼 대규모로 완전 무인 물류 시스템을 전면 공개하고 운용하는 첫 번째 사례입니다. 자율주행이라고 하면 흔히 테슬라의 로보택시나 웨이모의 승객용 무인 택시를 먼저 떠올리지만, 정작 우리의 일상을 바꾸는 물류 최전선에서는 이미 소리 없는 혁명이 완성 단계에 접어들었습니다.

펩시코의 무인 트럭 프로젝트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펩시코는 지난 2022년부터 가틱과 긴밀한 파트너십을 맺고 기술 고도화에 매진해 왔습니다. 처음 몇 년 동안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운전석에 전문 안전 요원(Safety Driver)을 탑승시킨 채 운행하며 수많은 데이터를 수집하고 안전성을 검증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기술적 확신을 얻은 2025년 6월, 운전석에서 사람을 완전히 제외한 ‘순수 무인 운행’을 개시했습니다.

현재까지 결과는 대성공입니다. 펩시코 측은 무인 운행을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공공 도로에서 단 한 건의 교통사고도 발생하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날씨나 제어 불가능한 극심한 교통 체증 같은 외부 요인을 제외하면, 정시 도착률이 무려 99%에 달합니다. 사람의 피로나 집중력 저하, 휴게 시간 필요성 등에서 자유로운 알고리즘 기반의 운전이 오히려 인간 운전자보다 더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물류 흐름을 만들어낼 수 있음을 입증한 셈입니다.

펩시코가 도입한 무인 트럭은 고속도로를 수백 마일씩 달리는 거대한 대형 트레일러(세미 트럭)가 아닙니다. 일본 이스즈(Isuzu) 브랜드의 중형 탑차(Box Truck)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차량 내부에는 여전히 스티어링 휠(핸들)과 에어컨 장치가 남아 있습니다. 재미있는 점은 이 에어컨이 운전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트럭 곳곳에 탑재된 초고성능 자율주행 컴퓨터의 열을 식히기 위해 가동된다는 사실입니다. 가틱의 공동 창립자이자 최고 엔지니어인 아펙샤 쿠마바트(Apeksha Kumavat)는 차세대 무인 트럭 모델에서는 기술적으로 핸들이나 운전석 공간 자체가 완전히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이 트럭들의 주 무대는 이른바 ‘미들 마일(Middle Mile)’이라 불리는 물류의 중간 단계입니다. 대형 제조 공장과 물류창고 사이, 혹은 물류창고와 대형 소매점 매장 사이의 단거리 노선을 반복해서 왕복하는 구조입니다. 예를 들어, 아리조나주의 가토레이 보틀링 공장에서 불과 14마일(약 22.5km) 떨어진 저장 창고까지 제품을 나르거나, 피닉스의 프리토레이(Frito-Lay) 창고에서 4마일(약 6.4km) 거리에 있는 월마트 매장으로 도리토스 박스를 배송하는 업무입니다. 차량 전후방과 측면에 촘촘하게 장착된 고성능 카메라, 레이더, 그리고 빛으로 거리를 측정하는 라이다(Lidar) 센서가 유기적으로 작동하며 복잡한 교차로와 보행자가 있는 시내 도로를 완벽하게 탐색합니다.

펩시코가 이처럼 무인 물류에 사활을 거는 배경에는 고질적인 인력 부족과 급증하는 물류 수요가 있습니다. 전 세계 물류 업계는 매년 심각해지는 트럭 운전자 부족 현상으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젊은 층의 유입은 줄어들고 기존 운전자들은 고령화되면서 운전자를 구하는 것 자체가 기업의 생존 과제가 되었습니다. 펩시코의 고위 관계자인 패럴(Farrell)은 인터뷰에서 “무인 트럭 도입을 통해 직원을 무리하게 늘리지 않고도 비즈니스를 지속적으로 성장시킬 수 있게 되었다”고 전했습니다. 특히 추수감사절이나 크리스마스 같은 대형 연휴 기간에는 소매점의 물동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데, 이때 휴무나 수당 문제없이 즉각적으로 대안 차량을 투입할 수 있다는 점이 큰 강점입니다. 제품 순환 주기가 빨라져 매장 매대에 빈틈이 생기지 않도록 실시간으로 물건을 채워 넣을 수 있는 혁신적인 유통 구조가 완성된 것입니다.

물론 기술의 급격한 발전이 장밋빛 미래만을 담보하는 것은 아닙니다. 펩시코의 이번 대규모 무인 트럭 운영 소식이 전해지자, 미국의 강력한 노동조합 중 하나인 ‘팀스터스(Teamsters, 국제형제트럭운전사조합)’는 즉각 우려와 반발의 목소리를 냈습니다. 노조 측은 무인 트럭의 확산이 장기적으로 수많은 운전원의 일자리를 위협하고, 도로 위 안전에 잠재적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에 따라 자율주행 상업용 차량이라 할지라도 최소한의 안전을 위해 반드시 인간 운전자가 차량에 탑승하도록 의무화하는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주 정부와 의회를 상대로 강력한 로비 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기술 혁신이 가져오는 경제적 효율성과 노동자의 고용 안정성 사이의 사회적 갈등은 앞으로 자율주행 물류가 풀어야 할 가장 큰 숙제입니다.

기술적 성취 측면에서 볼 때, 가틱의 자율주행 기술은 이미 시장의 거대한 신뢰를 확보한 것으로 보입니다. 가틱은 이미 수많은 다년 계약을 통해 약 6억 달러(한화 약 8,000억 원) 규모의 수주 잔고를 확보하며 비즈니스 모델의 유효성을 증명했습니다. 펩시코뿐만 아니라 캐나다 최대 식료품 체인인 로블로(Loblaw) 역시 토론토 지역에서 가틱의 기술을 활용해 20대 이상의 무인 트럭을 운행하고 있으며, 향후 더 확장할 계획입니다. 크로거(Kroger), 타이슨 푸즈(Tyson Foods) 같은 거대 유통·식품 기업들도 이미 가틱과 손잡고 무인 배송을 테스트하거나 도입 중입니다.

결론적으로, 펩시코의 이번 무인 트럭 대규모 도입은 자율주행 기술이 연구실이나 시범 구역을 벗어나 인류의 일상 경제 시스템 체계 내부에 깊숙이 뿌리내렸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입니다. 복잡한 고속도로 자율주행보다 상대적으로 통제가 용이하고 반복적인 ‘미들 마일’ 구간을 타깃으로 삼은 전략이 적중한 것입니다. 일자리 감소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규제 정비라는 과제가 남아있지만, 비용을 절감하고 효율성을 극대화하려는 유통 및 물류 시장의 도도한 흐름을 되돌리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우리가 마트에서 무심코 집어 드는 도리토스 한 봉지가 사실은 인간의 손을 전혀 거치지 않고 로봇이 운전하는 트럭을 통해 배달된 것일지도 모르는 시대, 자율주행 물류 혁명은 이미 우리의 일상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