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연방 상원에서 이중국적을 전면 금지하는 초강경 법안이 발의되면서, 헌법 위반 논란과 함께 해외 교포·이민자 사회에 큰 파장이 일고 있습니다. 공화당 버니 모레노 상원의원(R-OH)이 2025년 12월 1일 제출한 Exclusive Citizenship Act of 2025는 “미국 시민은 오직 미국 국적만 보유할 수 있다”는 원칙을 내세우며, 1년 안에 외국 국적을 포기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미국 시민권을 잃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법안 핵심 내용: “1년 안에 택하라, 아니면 미국 시민권 상실”
모레노 법안의 골자는 이중국적 자체를 불법화하는 것입니다.
- 법안 발효 180일 후부터 효력이 시작
- 이미 이중국적인 사람은 1년 안에 모든 외국 국적을 공식 포기하거나, 미국 시민권을 포기해야 함
- 1년 안에 외국 국적을 포기하지 않으면, 그 “무행동(inaction)” 자체를
- 이민·국적법(INA) 349(a)에 따른 자발적 미국 국적 포기로 간주
- 법안 시행 이후 새로 외국 국적을 자발적으로 취득하면,
- 즉시 미국 시민권 자동 상실
- 국무부·국토안보부가 이를 확인·기록하기 위한 절차와 시스템을 구축하도록 규정
모레노 의원 측은 이 법이 “미국에 대한 단일하고 배타적인 충성(sole and exclusive allegiance)”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콜롬비아에서 태어난 그는 18세에 미국으로 귀화하면서 직접 콜롬비아 국적을 포기한 경험을 들며, “미국 시민권은 다른 나라와 나눌 수 없는 명예이자 특권”이라고 강조해 왔습니다.
누가 영향을 받는가: 사실상 수백만 명 잠재 대상
법안이 그대로 시행될 경우, 영향을 받는 사람들의 범위는 매우 넓습니다.
- 원 국적을 유지한 귀화 시민
-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부모 국적 때문에 자동으로 2개 국적을 가진 자녀
- 미국 시민과 외국인 사이에서 해외에서 태어나 출생과 동시에 2개 국적을 취득한 자녀
- 혼인으로 상대 국가 법에 따라 자동으로 국적을 부여받는 경우
- 이민·취업 등으로 나중에 해외 귀화를 선택한 미국인
이들은 모두 1년 안에 외국 국적을 포기하지 않으면, 법률상 미국 시민권을 “스스로 포기한 것”으로 간주되며, 이후부터는 미국 국적을 상실한 사람으로 처리됩니다.
헌법·대법원 판례와 정면 충돌
전문가들이 가장 강하게 지적하는 부분은 이 법이 미국 헌법과 대법원 판례에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점입니다.
- 1967년 Afroyim v. Rusk 판결에서 연방대법원은
- 의회는 당사자의 자발적 의사 없이 시민권을 박탈할 권한이 없다고 못박았습니다.
- 수정헌법 14조의 시민권 조항에 따라, 시민은 스스로 자발적이고 명시적으로 포기하지 않는 이상 시민권을 잃지 않습니다.
- 1980년 Vance v. Terrazas 판결에서는
- 정부가 어떤 행위를 근거로 “시민권 포기”를 주장하려면,
- 그 행위가 자발적이었고
- 시민권을 버리려는 구체적 의도(intent) 가 있었다는 점을
- “우월한 증거(preponderance of evidence)”로 입증해야 한다고 명시했습니다.
- 단순히 외국 선거에서 투표했다는 사실만으로는 부족하고,
- 정말로 미국 시민권을 버리려 했는지 입증해야 한다는 취지입니다.
- 정부가 어떤 행위를 근거로 “시민권 포기”를 주장하려면,
모레노 법안은 “아무 행동도 하지 않은 것(무대응)”을 자동으로 “자발적 포기”로 간주합니다. 즉,
- 자발성(voluntariness) 요건 없음
- 명시적 의도(intent) 요건 없음
- 정부의 입증 책임(burden of proof)도 사실상 삭제
대법원이 요구한 모든 보호 장치를 정면으로 무시하는 구조라, 실제로 통과되더라도 연방법원에서 위헌 판결을 받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 헌법 학자들의 중론입니다.
현실적·외교적 난관: “누가 이중국적인지부터 모른다”
실무 집행 측면에서도 문제는 산더미입니다.
- 미국 정부는 현재 이중국적자 전체를 파악하는 중앙 데이터베이스가 없음
- 대부분은
- 여권 갱신 시 질문,
- 세금 신고,
- 자진 신고 등에 기반해 추정될 뿐
- 이 법을 강제하려면
- 수백만 명의 이민자·해외 동포를 상대로
- 이중국적 여부를 확인하고,
- 외국 국적 포기 증빙을 받는 엄청난 행정 작업이 필요
또한 많은 국가들은 미국이 일방적으로 선포한 외국 국적 포기를 인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미국 역시 과거, 외국이 자국민에게 강제로 미국 국적 포기를 요구한 경우 이를 인정하지 않아 왔습니다.
따라서 “미국 법상으로는 더 이상 미국 시민이 아니다”라고 처리된 이들이, 다른 나라에서는 여전히 이중국적으로 취급되는 기묘한 혼란이 생길 수 있습니다.
세금 폭탄 가능성: ‘커버드 엑스패트리엇’으로 낙인
이 법의 가장 무서운 부분 중 하나는 미국 세법상 “covered expatriate(특정 출국자)” 규정과 맞물릴 때 발생하는 출국세(exit tax) 폭탄입니다.
미국 세법은 미국 시민권을 잃거나 영주권을 포기하는 사람 중 다음에 해당하면 “covered expatriate”로 분류합니다.
- 순자산(재산) 200만 달러 이상
- 최근 5년간 평균 소득세 부담액이 일정 금액(2025년 기준 약 206,000달러)을 초과
- 최근 5년간 미국 세금 신고·납부에 완전히 성실하지 않은 경우
이렇게 분류되면,
- 시민권 상실 전날 모든 자산을 시가로 한 번에 판 것으로 간주(mark-to-market)
- 그 평가차익에 대해 최대 23.8%의 자본이득세 부과
- 이후 미국인 가족·상속인에게 주는 증여·상속에 대해 40%의 추가 세금이 미국 수령자에게 부과될 수 있습니다.
문제는, 모레노 법안이 “1년 안에 외국 국적을 안 버리면 그 자체를 ‘자발적 포기’로 본다”고 규정함으로써,
- 당사자는 세금 계획을 세울 시간도 없이
-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출국세 과세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특히 해외 거주 교포·사업가·전문직 가운데는
- 미국 시민권을 유지하면서
- 모국 국적도 유지해 온 이들이 많기 때문에,
법안이 실제 시행된다면 상당수가 “예기치 못한 세금 폭탄”을 맞을 위험이 있습니다.
다만, 일부는 “출생 시부터 이중국적이었던 사람”에게 주어지는 예외 규정을 활용해 출국세를 피할 여지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요건이 까다롭고, 일반인이 스스로 판단·적용하기 어려운 영역이라 전문 세무·법률 자문이 사실상 필수입니다.
정치적 상징 vs. 입법 현실
이 법안은 “분열된 충성심을 없애고 미국에 대한 단일 충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정치적 메시지를 담고 있지만,
- 현대 미국 사회에서 수세대에 걸친 이민·혼혈·복수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을 향해 과도한 배제 신호를 보내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거셉니다.
법조계와 헌법학계에서는
- Afroyim, Terrazas 이후 쌓인 판례를 감안하면
- 이 법안이 설령 상·하원을 통과해 서명되더라도,
- 연방법원 심사에서 위헌 판결을 피하기 어렵다는 전망이 우세합니다.
정리: 교포·이민자는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
아직은 초기 발의 단계라 즉시 제도 변화가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해외 교포·이민자, 특히:
- 미국 시민권 + 한국 등 모국 국적을 함께 가진 이중국적자
- 고액 자산가, 해외 사업가
- 세금 신고가 복잡한 이민 가정
은 다음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습니다.
- 향후 유사 입법이 재발의될 가능성을 고려해,
- 본인의 국적 구조(미국·타국) 와
- 세금 신고·자산 구조를 정리해 두는 것
- 이중국적·출국세 관련 논의가 계속될 가능성이 크므로,
- 관련 뉴스를 꾸준히 체크하고
- 필요시 미국 국제 조세 전문가에게 사전 상담을 받는 것
현 시점에서 이 법안은 “정치적 상징”에 가깝지만, 이중국적과 시민권에 대한 미국 내 여론과 정책 방향이 점점 더 엄격해질 수 있다는 신호로 볼 수 있습니다. 이민자·해외 교포 입장에서는, 장기적인 국적·세금 전략을 다시 점검해 볼 계기가 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