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아티아 자그레브. 대부분의 사람들이 로보택시와 연결 짓기 어려운 도시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 도시에서, 웨이모가 장악하고 있는 자율주행 시장에 유럽발 도전자가 나타났습니다. 2026년 3월 26일, 우버와 중국 자율주행 기업 포니AI(Pony.ai), 그리고 크로아티아 스타트업 버니(Verne)가 유럽에서 상업 로보택시 서비스를 시작하는 3자 파트너십을 발표했습니다. 버니의 배후에는 22억 달러짜리 전기 하이퍼카 네베라(Nevera)를 만든 리막 그룹의 창업자 마테 리막(Mate Rimac)이 있습니다. 그가 7년 전부터 조용히 준비해온 로보택시 프로젝트가 이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마테 리막이 왜 로보택시인가 — 역설적인 선택의 논리
마테 리막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전기차를 만드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리막 네베라는 시속 100킬로미터까지 1.81초 만에 도달하는 전기 하이퍼카로, 가격은 220만 달러(약 30억 원)에 달합니다. 리막 그룹은 부가티를 인수해 리막 부가티를 만들었고, 리막 테크놀로지, 리막 에너지 등 여러 사업체를 보유한 기업 생태계를 구축했습니다.
이런 그가 왜 도심 로보택시를 선택했을까요. 리막의 논리는 역설적이지만 명확합니다. 그는 수년 전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율주행 기술이 결국 인간이 운전하는 자동차를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만들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인간이 운전하는 대량 생산 전기차 사업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반드시 올 것입니다. 확신합니다.” 하이퍼카는 예술이자 극한의 기술 표현입니다. 하지만 일상적인 이동 수단의 미래는 자율주행에 있다는 것이 그의 판단입니다.
버니(Verne)의 탄생 — 7년의 비밀 프로젝트
버니는 2019년 리막 그룹 내부에서 ‘프로젝트 3 모빌리티(P3)’라는 코드명으로 시작됐습니다. 오랫동안 외부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채 조용히 개발이 진행됐습니다. 그러다 2024년 7월, 버니는 1억 유로(약 1,500억 원) 규모의 시리즈 투자를 발표하며 처음으로 대중에게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마테 리막은 리막 그룹의 23% 지분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버니의 비전은 명확합니다. 도심에서 운행하는 목적 설계형 2인승 전기 로보택시입니다. 자체 라이드헤일링 앱과 플릿 운영을 위한 백엔드 인프라도 직접 구축합니다. 버니의 로보택시 전기차는 크로아티아 루치코(Lučko)에 건설 중인 새 공장에서 생산될 예정이며, 올해 안에 생산을 시작할 계획입니다. 현재까지 60대의 검증 프로토타입이 제작·테스트됐습니다.
3자 파트너십의 구조 — 역할 분담이 핵심
이번 파트너십에서 세 회사가 맡는 역할은 명확하게 나뉩니다. 포니AI는 자율주행 시스템과 로보택시 차량을 공급합니다. 중국 자동차 제조사 BAIC와 공동 개발한 아크폭스 알파 T5(Arcfox Alpha T5)가 초기 서비스에 투입됩니다. 버니는 플릿을 소유하고 운영합니다. 차량 관리, 청소, 유지보수, 충전 인프라 등 실제 서비스 운영을 담당합니다. 우버는 방대한 라이드헤일링 네트워크를 제공합니다. 승객들은 우버 앱은 물론 버니의 자체 앱으로도 로보택시를 호출할 수 있습니다. 우버는 또한 버니에 미공개 금액을 투자하고 전략적 파트너로서 향후 확장을 지원합니다.
포니AI의 참여는 주목할 만합니다. 중국에서 광저우, 베이징, 상하이 등 여러 도시에서 로보택시를 운영 중인 포니AI가 유럽 시장 진출의 발판으로 버니를 선택한 것은 양측 모두에게 전략적으로 유리한 선택입니다. 포니AI는 이미 검증된 자율주행 기술을 유럽 시장에 이식하고, 버니는 자체 자율주행 시스템 개발 없이 포니AI의 기술을 활용해 빠르게 서비스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자그레브에서 시작하는 이유 — 유럽의 로보택시 공백
왜 자그레브일까요. 가장 명확한 이유는 리막 그룹의 본거지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닙니다. 자그레브는 유럽에서 자율주행 규제가 비교적 덜 복잡한 환경을 갖추고 있으며, 도시 규모도 대규모 테스트와 초기 상업 서비스를 진행하기에 적합합니다. 현재 자그레브에서는 이미 도로 테스트가 진행 중입니다.
버니 CEO 마르코 페이코비치는 “유럽은 테스트에서 실제 서비스로 나아갈 수 있는 자율 모빌리티가 필요합니다. 버니에서 우리는 이를 현실로 만드는 데 필요한 기술, 플랫폼, 운영 역량을 한데 모으고 있습니다. 자그레브에서 시작해 새로운 시장으로 확장할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유럽 로보택시 시장의 현주소 — 공백이 기회다
미국에서는 웨이모, 줌, 우버·리비안 등이 로보택시 시장을 두고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습니다. 반면 유럽은 이 경쟁에서 상대적으로 뒤처져 있습니다. 규제 환경의 복잡성, 도시 구조의 다양성, 각국 교통 인프라의 차이 등이 대규모 자율주행 서비스 출시를 어렵게 만들어 왔습니다.
버니는 이 공백을 기회로 봅니다. 미국과 중국에서 웨이모와 바이두가 서비스를 안착시킨 것처럼, 유럽에서도 누군가는 먼저 시장을 개척해야 합니다. 버니는 자그레브에서 시작해 “향후 몇 년 안에 수천 대 규모의 플릿”으로 확장하고, 크로아티아를 넘어 다른 유럽 도시들로 서비스를 넓힐 계획입니다.
우버의 유럽 전략 — 로보택시 포트폴리오를 유럽으로
이번 파트너십은 우버의 글로벌 로보택시 전략의 맥락에서도 읽힙니다. 우버는 이미 미국에서 웨이모, 줌, 리비안 등 20개 이상의 자율주행 파트너와 협력하고 있습니다. 버니·포니AI 파트너십은 이 전략을 유럽으로 확장하는 첫 번째 중요한 걸음입니다. 우버의 참여가 버니에게 단순한 자금 이상을 의미하는 것은 우버가 이미 유럽 여러 국가에서 운영하는 광대한 라이드헤일링 네트워크 때문입니다. 우버 앱을 통한 로보택시 호출은 서비스 초기 수요를 빠르게 확보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결론 — 로보택시 혁명의 다음 무대는 유럽이다
2억 2천만 달러짜리 하이퍼카를 만드는 회사의 창업자가 7년간 도심 2인승 로보택시를 준비해왔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이제 우버·포니AI와의 3자 파트너십으로 현실이 됐다는 것은 자율주행의 미래에 대한 강력한 신념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자그레브는 작은 시작처럼 보이지만, 유럽 로보택시 시장의 문을 여는 첫 번째 열쇠가 될 수 있습니다. 웨이모가 샌프란시스코에서, 바이두가 베이징에서 그랬던 것처럼, 버니가 자그레브에서 그 역사를 쓰려 하고 있습니다.
